<This Is Us>의 이야기 방식
① 감정의 밀도로 재배열된 시간
드라마는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 회차는 ‘감정의 주제’를 기준으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회에서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 잭이 아버지를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 랜들이 입양아로서 느꼈던 소외감, 성인이 된 케빈이 연기자로서 겪는 불안함이 교차 편집됩니다. 이처럼 시간은 흐르지 않고, 감정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며 재배열됩니다. 이 방식은 한 가지 감정을 다양한 삶의 국면에서 조망하게 해주며, 시청자의 감정 몰입을 극대화합니다.
② 기억처럼 작동하는 이야기 구조
인간의 기억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닙니다. 특정 사건은 감정과 결합되어 불쑥 떠오르며, 그 감정은 또 다른 기억을 자극합니다. ‘This Is Us’는 바로 이런 기억의 메커니즘을 따라갑니다. 케빈이 형과 다투는 장면 뒤에, 과거 어린 시절 같은 이유로 갈등했던 장면이 연결되면, 그것은 단지 과거 회상이 아니라 감정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시청자는 등장인물의 삶을 시간 단위가 아닌 감정 단위로 받아들이게 되고, 더 깊은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③ 감정이 주도하는 플롯의 힘
이 드라마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각기 다른 인물의 관점과 맥락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서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시점에서의 감정이 다른 시점으로 이어지며 변주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각 회차가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아닌, 감정을 하나의 실처럼 꿰어 전체를 엮는 서정적인 대서사시처럼 다가옵니다. 이는 회상 구조를 넘어서 ‘감정의 회로도’를 만드는 고유한 서사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④ 공감의 다층 구조
이러한 시간 구조는 단순히 연출의 묘미를 넘어 시청자에게 강한 감정적 공감을 제공합니다. 과거의 한 장면에서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난 뒤, 몇 시즌 후의 장면에서 같은 인물이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는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을 넘어서 성장의 서사에 깊게 공감하게 됩니다. 이처럼 ‘This Is Us’의 감정 중심 내러티브는 감정이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의 감정이 다시 시간과 삶을 재구성하는 원형적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물의 시간을 잇는 캐스팅과 연기의 마법
① 감정을 잇는 눈빛과 습관의 연속성
랜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여러 배우가 연기하지만, 그 연결성이 거의 완벽합니다. 어린 랜들이 불안할 때 손을 비비는 모습은 청소년기에도, 성인 랜들(스털링 K. 브라운 분)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사소한 습관이나 감정 표현 방식이 일관되게 반복되면서, 시청자는 서로 다른 배우를 같은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단지 외형이 아니라 ‘감정의 연기’가 이어지는 결과입니다.
② 연기를 통한 성장의 서사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나이가 들면서 단순히 외모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처리 방식과 말투, 목소리 톤까지도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입니다. 성인이 된 케이트가 소심하지만 단단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모습은, 어린 시절 겁 많고 내성적이던 케이트의 내면이 오랜 시간 다져졌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 덕분에 시청자는 성장이라는 긴 서사를 ‘연기’를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③ 한 인물의 시간을 품는 맨디 무어의 연기
가장 인상적인 예는 레베카를 연기한 맨디 무어입니다. 그녀는 20대의 밝고 낙천적인 레베카에서, 중년의 복잡한 감정과 책임감을 짊어진 어머니, 그리고 노년기의 치매를 앓는 여성까지 모든 시기를 혼자 연기합니다. 분장을 제외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 시선, 말투는 인물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특히 노년기의 레베카가 과거를 되새길 때 보여주는 깊은 눈빛은, 젊은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내포하고 있어, 시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기억을 품은 존재’로 완성됩니다.
④ 연기를 넘어선 디테일의 통합
‘This Is Us’는 각 시기의 연기자들이 협업하여 감정의 맥락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연기 지도를 넘어, 각 배우가 서로의 감정 선을 이해하고 감정의 흐름을 공유함으로써 가능해진 일입니다. 특정 말버릇이나 제스처, 심지어는 숨 고르는 방식까지도 동일하게 재현되면서, 시청자는 ‘같은 사람의 다른 시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통합적 연기 전략은 ‘This Is Us’가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서 인간의 서사 전체를 연기적으로 구현해낸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This Is Us’의 소품 연출이 주는 울림
‘This Is Us’는 소품을 단순한 배경으로 두지 않고, 감정을 담는 그릇으로 활용합니다. 드라마에서 특정 물건은 등장인물의 감정과 연결되며 반복적으로 등장해, 시청자에게 감정의 지표로 기능합니다. 그것은 회상, 상실, 추억, 그리고 이어짐의 상징으로 작용하면서 드라마의 정서적 깊이를 더합니다.
① 일상의 사물이 담는 감정의 파편
예를 들어 잭이 아침마다 사용하던 머그잔은 단순한 커피잔이 아니라, 가족과의 소중한 일상을 상징합니다. 잭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레베카가 그 머그잔을 계속 사용한다는 설정은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 물건을 통해 잭이라는 인물이 여전히 가족 곁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게 하는 ‘감정의 저장 장치’로 기능합니다.
② 사라진 사람과 연결되는 감정의 통로
잭의 재킷, 케빈의 스카프, 레베카의 악보 등은 모두 인물의 기억과 연결됩니다. 특히 케빈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재킷을 몰래 입는 장면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잭을 향한 그리움과 동경이 느껴집니다. 이후 그 재킷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 시청자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소품은 감정의 증폭제이자, 기억을 시간 너머로 이어주는 도구가 됩니다.
③ 반복을 통해 축적되는 감정의 연결 고리
드라마는 소품을 한두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되풀이되도록 설계합니다. 피아노 악보, 오래된 캠코더, 펜던트 등은 시즌을 거듭하며 점차 새로운 의미를 얻고, 시청자도 그 소품의 의미 변화를 함께 겪게 됩니다. 반복되는 물건의 등장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감정의 진화를 보여주는 장치가 되며, 이를 통해 시청자는 드라마 속 인물과의 정서적 유대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됩니다.
④ 소품의 맥락성과 삶의 진정성
‘This Is Us’의 소품은 단지 미술 소품을 넘어서, 인물의 삶이 응축된 실체로 기능합니다. 랜들이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던 장난감 자동차가 몇십 년 후 그의 아이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단순한 소품의 전달이 아닌 삶의 의미가 전승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감정과 시간이 깃든 사물은 드라마의 현실성을 높이며, 시청자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깊은 감동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