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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와 해외 유사 복수극, 동기, 서사 구조

by secretmoneyrecipe 2025. 4. 14.

 

더 글로리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단순한 복수극 이상의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문동은이 학창 시절 겪은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철저히 준비한 복수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러나 복수극이라는 장르 자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특히 해외 드라마에서는 ‘복수’라는 주제를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서사 구조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더 글로리』와 해외 유사 복수극을 비교하며, 그 안에서 드러나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더 글로리’와 해외 유사 복수극

① 한국식 복수, 고통의 완곡한 설계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의 복수는 직접적인 폭력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친 정밀한 심리전과 관계 조작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녀는 가해자들의 삶에 스스로 금이 가도록 유도하며, 그들이 자멸하게 만드는 방향을 택합니다. 이 방식은 한국 드라마 특유의 감정 이입 중심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으며, 정면충돌보다는 철저한 계획과 조용한 파괴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입니다. 또한 법을 직접 이용하기보다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활용해 도덕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더 글로리』는 "공공의 복수"가 아닌 "개인의 정의"로 이끌어가는 서사입니다.

② 미국식 복수극, 정면 돌파와 초법적 선택

반면, 미국 복수극의 대표작인 『리벤지(Revenge)』는 보다 선명하고 빠른 전개와 강렬한 감정 표현을 특징으로 합니다. 주인공 에밀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린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복수해나가는 구조를 지닙니다. 에밀리는 신분을 숨기고 상류층 사회에 침투하며 복수를 실행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훨씬 공격적이며 법적 테두리를 넘나듭니다. 사적인 정의 실현이지만, 폭로, 협박, 조작 등 좀 더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을 활용합니다. 이는 미국 드라마 특유의 서사 속도와 인과 관계의 선명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빠르게 제공하는 구조입니다.

③ 유럽식 복수, 도덕과 회의 사이

유럽 드라마, 특히 영국의 『해피 밸리(Happy Valley)』 같은 작품에서는 복수가 반드시 완결되지 않거나, 복수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 혹은 가족의 입장에서 시작된 복수는 종종 더 큰 비극을 낳거나, 주인공 스스로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이는 복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인간의 감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복수는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설명하려는 하나의 서사적 장치이지만, 결국 "이 방식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④ 복수의 방식이 보여주는 문화 코드

이처럼 복수극에서 어떤 방식을 채택하는지는 단순히 캐릭터의 선택이 아닌, 그 사회가 지닌 문화적 배경, 법의 신뢰도, 정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한국은 법과 사회의 공공정의에 대한 회의 속에서 개인적 복수가 감정적으로 정당화되며, 미국은 개인주의와 정의 실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유럽은 도덕과 인간의 내면 탐구를 중요시합니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이 중에서도 가장 절제되고 인내심 강한 복수자의 전형이며, 그 방식은 폭력보다 섬세함, 파괴보다 해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복수극은 단순히 ‘되갚음’이 아니라, 각 사회가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의 문화적 은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수의 동기 

① 문동은, 고통의 증명으로서의 복수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지 못한 현실에서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녀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로서 가해자들의 무관심과 사회의 무능력에 이중의 상처를 받았고, 이를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이 복수였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복수는 단순히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입니다. 복수는 그녀가 살아 있다는 증표이며, 그녀가 겪은 일이 실제였음을 세상에 증명하는 수단이 됩니다. 이 점에서 문동은의 복수는 감정적으로 철저히 피해자 중심적이며, 정의 구현보다 ‘존엄 회복’에 더 가깝습니다.

② 가족을 위한 복수,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미국 드라마 『리벤지』의 에밀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한 사건을 복수의 기점으로 삼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고통을 겪은 피해자가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감정적 유대와 진실을 알게 된 죄책감이 복수의 불씨가 됩니다. 이는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가장 소중한 이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복수의 동기는 보다 외향적이고, ‘대신 갚아주는’ 행위로 나타나며, 주인공이 점점 복수심에 잠식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성의 양가성을 보여줍니다.

③ 상처 입은 정의감, 사회의 죄를 혼자 책임지는 인물

유럽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동기는, ‘상처 입은 정의감’입니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졌거나, 법이 책임을 회피할 때 그 빈틈을 메우려는 자발적 정의 실현의 주체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드라마 『엘리트(Élite)』나 프랑스 드라마 『루팡』에서도, 주인공들은 자신이나 가족이 직접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닌 경우에도, 사회적 모순이나 불의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복수자가 됩니다. 이들은 감정보다 이념에 가까운 동기를 갖고 있으며, 복수 그 자체보다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④ 복수 동기가 드러내는 정체성의 중심

복수가 왜 시작되었는지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나를 위해서’ 복수하는 문동은, ‘아버지를 위해서’ 복수하는 에밀리, ‘정의를 위해서’ 복수하는 유럽 드라마의 주인공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분노를 선택하지만, 공통적으로는 그 사회의 결핍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피해자의 고통이 쉽게 무시되며, 미국에서는 가족의 명예가 곧 개인의 정체성이며, 유럽에서는 제도적 부정의를 대항하는 개인의 책임감이 강조됩니다. 이처럼 복수의 동기는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각 사회의 민감한 감정선과 맞닿아 있는 중요한 내면 서사입니다.

복수극의 서사 구조 

① 파괴의 도구로서의 복수

복수극의 가장 흔한 결말은 파괴입니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은 복수를 완성해나가면서 점점 고립되고, 내면의 어둠과도 싸워야 합니다. 복수의 여정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지만, 그 끝은 반드시 행복하거나 해방감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수를 마친 이후에도 문동은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복수는 그녀의 삶을 구성한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삶을 갉아먹는 칼날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복수는 가해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 자신도 무너뜨리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에서 비극적 구조를 따라갑니다.

② 구원의 과정으로서의 복수

그러나 복수가 반드시 파괴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복수극은 복수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킬링 이브』의 빌라넬이나 『베터 콜 사울』의 지미 맥길 같은 인물들은 복수를 통해 자신이 감추고 있던 감정과 진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복수는 그들에게 일종의 정체성 회복이며, 사회와 자신 사이의 단절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같은 복수 서사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며, "복수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경우 복수는 자멸이 아니라 회복의 서사로 변모합니다.

③ 서사 구조의 전환점 – 공감인가 파괴인가

복수극이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붙잡는 이유는 바로 이 선택의 순간 때문입니다. 복수를 감정적으로 정당화하면서도, 그 복수가 완성될 때 우리가 느끼는 씁쓸함은 서사의 방향이 ‘공감’에서 ‘파괴’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더 글로리』의 후반부가 바로 그런 지점입니다. 문동은은 동정받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어느 순간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그 복수의 끝이 그녀에게 더 큰 고통일 수도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전환은 복수극이 단순한 장르를 넘어 정서적 서사로 기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④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복수의 결말

한국의 복수극은 대체로 복수 이후의 공허함, 인간성의 상실, 그리고 구원 없는 파국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공동체적 감정과 도덕 중심의 서사 관습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의 복수극은 복수 그 자체보다 인물의 ‘선택’에 의미를 둡니다. 복수를 멈출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혹은 복수 이후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따라 서사가 변화합니다. 이런 차이는 복수극이 단순히 복수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도덕성, 사회와 개인의 균형, 그리고 치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